서산 관음상 등 환수 비판은
피상만을 본 무책임한 행동들
역사적 상처 치유임을 알아야

얼마 전 월간지에 모 교수가 쓴 부여 백제관음보살입상과 서산 부석사 관음상에 대한 기고문을 보았다. 주요 내용은 ‘해외 유출 불상에 대한 감정 과잉’을 지적하는 것이다. 내용 중 일부는 이와 같다.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돌려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과 돌려줘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거액을 들여서라도 규암리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을 구입해 들여와야 한다는 의견과 적절한 가격 이상으로 사들이는 것은 곤란하다는 의견이 맞섰다. 이 논란은 기본적으로 해외 유출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했다. 그런데 그 애틋한 마음이 지나쳐 감정의 과잉으로 나아갔다.”
두 불상의 환수 활동을 10여년 간 함께 했던 필자로서는 해당 기고문의 내용에 대해 사실을 바로잡고 문화유산 회복운동의 본질과 원칙을 이야기하고 싶다.
서산 부석사 관음상은 2013년 3월 ‘불상 봉안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7년간 재판을 거쳤다. 재판 결과는 민법상 ‘시효취득 성립’에 의해 대마도 관음사에 소유권이 있다고 했지만, 고려 말 왜구의 약탈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결국 재판은 약탈품이라도 점유 시효로 인해 소유권이 20년 이상 점유자에게 있다는 민법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도품(盜品)에만 주목하고 역사적 사실을 밝히거나 재판부에 의해 전부 배척된 피고 검찰의 무리한 항소 이유를 질타하기보다는 여전히 약탈의 개연성만을 주장하고 있다. 피상적인 결과보다는 깊이 있는 안목과 공부가 절실하다는 것이 봉안 운동에서 겪은 체험이다.
부여 규암리 백제관음보살입상에 대해서는 가치보다는 가격에 집착하며 “거액의 협상액을 꾸중”한다. 그럼에도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불상의 가격을 밝힌 것은 정부다. 이는 이전에 없던 일이며, 협상에서 벌어진 과정이고 결론이 아니다. 지금도 과정에 있고 과정은 변하게 된다. 그러니 일부의 내용이 전부라고 착각하는 주장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화유산회복운동은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예술 등 전 분야가 집약된 운동이다. 역사적인 활동에는 일각의 주장만이 아니라 전 사회 구성원의 의견과 여론도 중요하다.
손재형 선생은 1943년 폭탄이 떨어지는 도쿄로 가서 소장인의 거듭된 거절에도 100일 안부 인사를 하는 정성을 다한 끝에 현재 국보인 ‘세한도’를 돌려받았다. 정성을 다한 것이다. 회복과정은 이처럼 정성과 정량이 합치될 때 그 효과가 만발한다. 마치 병자에게 약물과 기도가 필요한 것과 같다.
감정은 배척할 것이 아니라 승화돼야 한다. 회복 운동은 물건 되찾는 일이 아니라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더 나은 문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소모적 쟁화(爭話)보다는 안목있는 성찰(省察)이 절실하다. 지금도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